프리미어리그중계

프리미어리그

프리미어리그

잉글랜드의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이며 1992년에 출범하면서 종전까지 있었던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의 최상위 리그 포지션을 대체했다. 전 세계 축구리그 중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리그이며 전 세계 스포츠리그에서는 4위를 차지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개편 이유는 크게 헤이젤 참사(1985)로 5년간 유럽대항전 출전이 금지되어 리그 경쟁력이 도태되고 힐스버러 참사(1989)로 인해 리그 개편의 필요성을 느끼면서이다. 이에 1992년 풋볼리그와 관계를 단절하고 나온 리그가 프리미어리그이다.

초창기에는 리그에 22개 팀을 두어서 한 시즌 팀당 42경기를 치러야 했으나, FIFA 측이 경기가 너무 많다고 하여 20개로 줄여서 현재 한 시즌 38경기를 치른다. 이중 상위 4팀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 권한을 얻고 5위팀부터 FA컵과 리그컵 결과에 따라 최대 7위까지 UEFA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얻게 된다. 최하위 3팀은 하위리그인 EFL 챔피언십으로 강등 당하게 된다.

초창기 약 30년 가까이는 럭비나 크리켓 또는 조정이나 폴로같은 여러 스포츠에 밀려났으며 축구는 가난한 하층 노동자들의 야만적인 스포츠[1]라는 인식이 강했다. 물론 대다수 서민들에겐 초창기부터 인기를 얻어왔으나, 상류층에겐 투자나 스폰서 같은 면에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기에 축구선수들의 경제적 수익이 크지 않았다.

덕분에 프로구단들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아서 지금으로 도무지 믿기지 않을 일들이 꽤나 많았다. 몇 가지 예를 보자면,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00년전에는 경기장 고칠 돈이 없어서 비가 오면 늘 물에 잠겨서 아예 수중 축구를 해야 할 정도였다.
 
  • 아스날은 1913년 하이버리로 이전할 당시 경기장 시설이나 의료 시설을 엉망으로 대충 지으면서 다친 선수들을 우유배달 마차에 실어 병원으로 보냈다. 문제는 우유배달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병원으로 갔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늦어 일 다 끝내고 밤중에 병원 보내는 일도 허다했다 선수 생활을 끝장나게 하는 예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리그가 중단되어 경기장 관련 건설도 중단되면서 리그가 재개되고도 1920년대 중순까지 이런 일이 계속 벌어졌다.
 
  • 첼시는 경기장이 진흙투성이라 비가 오면 진흙축구를 해야했고, 탈의실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 블랙번 로버스는 경기장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도 메꿀 여력이 없어서 대충 나무로 가리는 통에 선수들이 빠지기도 했다.
 
  •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경기장이 평평하게 지어지지 않아 한쪽 팀 골대가 반대쪽보다 6cm이상이나 높았다.
 
  • 아스톤 빌라는 1899년 겨울에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로 구석에 대충 밀어둔 게 리그 개막때까지 산같이 그대로 남아서 할 수 없이 경기하다가 공이 여기로 올라가면 선수들이 공을 차러 올라가다가 단체로 넘어졌다. 웃기게도 이는 다른 구단에서도 종종 벌어졌던 일이다.
 
  • 하부 리그를 전전하며 잊혔다가 2017년 45년만에 최상위 리그로 복귀한 허더즈필드 타운(Huddersfield Town A.F.C.)은 왕년에 리그를 3연속 우승하며 이름을 날렸지만 탈의실이 없어서 폐기전차를 그냥 가져와 대충 천으로 가리고 탈의실로 썼다.
 
  • 1882~1894년까지 존재하던 축구팀으로 초창기 리그 1에도 들어간 노스위치 빅토리아는 경악스럽게도 경기장 옆이 호수였고 근처 선창가에 탈의실을 만드는 엽기적인 일까지 벌였다. 더 가공할 만한 것은 이 시설이 엉망이라 탈의실에서 옷 갈아입던 선수들이 바닥이 무너져 단체로 호수에 빠지기도. 이 팀은 14-15시즌 현재 8부 리그에 해당하는 노던 프리미어 리그 디비전1 노스에서 경기를 치루고 있다. 이 팀은 프로 구단으로 FA 풋볼 리그에서 몇 시즌을 뛰었지만, 재정난 등의 이유로 인해 풋볼 리그의 재가입을 마다하고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하게 된 것.
 
  • 그 밖에도 대다수 경기장들이 선수 탈의실도 없어서 대충 구석에서 천으로 가리고 갈아입는 게 흔했고, 관중석 수준도 의자는 커녕 자그마치 사과 궤짝을 깔고 앉아 봐야 할 정도로 최악인 프로 경기장까지 많았으며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이런 가운데, 그나마 초창기 프로경기장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구디슨 파크에버튼의 안방인 이곳은 세계 최초의 프로축구 전용경기장이었기에 1890년대에는 최첨단 시설이었으며, 1913년 영국 왕 조지 5세가 처음으로 리그 경기를 보러온 곳도 바로 여기였다. 조지 5세의 경기장 관람은 화제가 되었고 비로소 하위 스포츠라던 축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만든 계기가 된다.

1890년대만 해도 선수들의 평균 이적료는 겨우 10파운드(물론 당시에는 꽤 큰 돈이긴 했다.) 수준이었던 것이 1950년대에는 1만 파운드 이상, 최고 10만 파운드 이상으로 급격하게 올랐다. 이렇듯 왕족이나 귀족들이 서서히 관심을 기울이면서 인식도 달라지고 투자와 여러가지 사정이 좋아지면서 점차 리그 시설 등도 개선되며 선수들이 받는 돈의 수준도 올라갔다.
본래는 풋볼 리그 산하 최상위 리그로서 ‘퍼스트 디비전’이란 명칭을 사용했으나 1980년대 중후반 헤이젤 참사와 힐스버러 참사가 일어나면서 추락한 이미지를 회복시키고자 1992년 풋볼 리그와 역사적 관계를 완전히 단절한 뒤, 프리미어 리그란 이름의 별도 법인으로 새롭게 시작했다.

프리미어 리그는 2000년 5위였던 UEFA 랭킹을 2001년 프랑스 리그앙과 독일 분데스리가를 제치면서 3위로 끌어올리며 반등에 성공했고, 이후 2005년 세리에 A를 제치고 리그 랭킹 2위를 차지했으며, 2008년 시즌부터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마저 제치고 유럽 최고의 리그로 우뚝 서게 된다.

하지만 2013년, 라리가에게 다시 UEFA 리그 랭킹 1위 자리를 내주게 되었으며, 2015년부터는 분데스리가에게마저 따라 잡히며, 리그 랭킹 3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2017년 빅6 구도의 형성과 2016-17 시즌 맨유의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분데스리가 클럽들의 삽질로 따라잡을 기미가 보이더니 결국 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진행 중에, 빅6의 좋은 성적과 분데스리가의 삽질로 리그 랭킹 2위를 탈환했다.

뻥글랜드라 불릴 정도로 뻥축구(킥 앤드 러시)만 구사했던 잉글랜드의 특성상 과거에는 뻥축구만 하는 팀들이 꽤 많았다. 최근에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상당히 늘어 상위권 팀들은 대개 뻥축구를 구사하지 않는다. 아스날이 선두주자로 꼽히는데, 벵거볼이라 불리는 스타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리그의 역사가 긴 탓인지 하부 리그로의 강등을 경험하지 않고 1부 리그에만 머무는 클럽은 하나도 없다.[2] 다만 2부 리그 밑으로 떨어지지 않은 클럽들은 8개가 있는데, 현시점에서도 빅클럽들인 뉴캐슬, 리버풀, 맨유, 아스날, 에버튼, 웨스트 햄, 첼시, 토트넘(가나다순)이 그들이다. 여담으로 이들 중 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구단은 웨스트 햄뿐이다. 프리미어 리그 출범 후 개근팀은 리버풀, 맨유, 아스날, 에버튼, 첼시, 토트넘의 총 6팀이다.

특히 여러 방송사와 중계권을 계약하여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홍보 효과가 매우 좋아지자 자본이 프리미어리그로 투입되게 되었습니다.

쓸대없이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비평도 있지만 너무 단편적으로 볼 것은 아닙니다.  물론 티켓 값이 많이 오른다던지 하는 부작용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스포터들이 이런 자본의 투입을 찬성하고 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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